< 곡성 > 을 보고...

<곡성> 을 보았다.

다보고나서 다들 화를 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일단 소문만큼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결말을 제대로 그렸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평을 보니, 독버섯이 원인이고, 나머지는 독버섯의 환각 증세라는 것이다. 따라서 독버섯의 환각 증세에만 치우치다 보니, 그 실질적 원인인 독버섯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혹된 것이다.

다른 의견들은 벌어지는 사건 자체에 대한 해석이다. 어떤 이는 수호신과 외래신 대결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일본의 칩입 과정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기도 하며, 또다른 어떤 이는 우리 내부에 있는 외부인에 대한 혐오를 고발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위 의견에 따르면 이 의견들은 모두 현혹된 것이겠지만.

첫번째 의견을 지지하는 이들은 나머지를 환각 증세로 치부해버리고 의미를 부여하려하지 않는다. 반면에 두번째 의견을 지지하는 이들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독버섯에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는다. 어쨌든 두 가지 의견이 양립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둘은 겉보기에만 양립하지 못할 뿐이지, 실제로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다. 한 사건의 두 가지 측면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들뢰즈가 주장한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들뢰즈는 긍정의 철학자이자, 사건의 철학자이며 최고의 형이상학자로 불린다. 그는 그간의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로 들뢰즈는 유물론에 바탕을 둔 일원론적 이원론을 주창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로부터 사건이 발생하지만, 이 사건이 형이상학적 평면(문화적 체험)을 거치게 되면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며, 이렇게 발생한 의미는 물질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의미는 물질의 효과로 불리기도 하고 혹은 시뮬라크르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앞서 제시된 의견들에 적용해보면, 독버섯이라는 물질 사건이 각자의 문화적 체험을 거쳐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 속에서도 그렇고, 영화 밖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환각으로 치부할 필요도 없고, 물질 사건을 무시하고 상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도 없다. 나홍진이 들뢰즈를 읽은 것일까 ?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긴장감이 극대화되었을 때를 꼽으라면, 단연 무명(천우희)가 종구(곽도원)을 붙잡고 있을 때였다.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다고... 물론 종구는 기다리지 못하고 간다. 여러가지 정황상 일광(황정민)의 말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 기다릴 수 있었을까 ?

어쨌든 실제로 집에 돌아가보면 모두가 죽어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든다.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니까. 그래서 무명(천우희)가 붙잡은 이유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감독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를 영화적으로 차용한 것은 아닐까 ?

영화의 처음과 끝에 금어초라는 것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시든 채로 등장하고, 끝에는 종구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시드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끊임없이 현혹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 생각된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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