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준 > 을 보고...

한동안 모든 언론과 여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교육 문제가 잠시 가라앉은 상태에 있지만,

MBC 에서 방송하고 있는 ‘허준’ 은 이런 측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허준’ 이라는 드라마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유의태’ 이다. 바로 그가 지향하고 있는 의원의 상을 분석해 봄으로써 이 시대를 점하고 있는 교육관에 대한 비판을 해보고자 한다.

드라마를 꾸준히 보았던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유의태라는 인물이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의원의 모습은 ‘심의’ 이다. 그렇다면 이 ‘심의’ 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 이에 대한 대답은 유의태와 나병 환자를 치료하면서 간혹 찾아오는 그의 친구, 그리고 유도지라는 유의태의 아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로부터 알아볼 수 있다. 그 친구는 유도지에게 묻는다.

‘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

‘...’

‘긍휼일세’

( 물론 정확하게 이런 대사를 했다고 믿는 분은 없으시죠 ? 그냥 이런 의미의 대화였슴다. ^^; )

우리는 이와 더불어 이런 대화가 어느 시점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대화는 유도지가, 자신의 아버지인 유의태가 어의 양외수와 벌인 구침지의 사건 때문에 의과 시험에 떨어지고 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대화였다. 따라서 이 대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유도지가 가지고 있는 의원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결국 의원의 최고 경지인 심의는 어떤 벼슬 자리로서 인정받는 것이 아님을, 자신의 마음가짐을 통해서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견해는 허준이 정경 부인의 풍을 치료하고서, 우상 대감의 서찰을 받은 것에 대한 유의태의 태도를 통해 다시 한 번, 더욱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유의태는 허준이 꺼낸 서찰을 불에 태우면서 이런 말을 한다.

‘네 놈이 그 서찰을 받아둔 순간부터 너는 의원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의 대사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대사이다.

‘나에게서 배운 것을 기량을 늘리는데 쓰지 않고, 벼슬 자리 하나 얻어볼까해서 서찰을 받아든 것 자체가 이미 나를 배신한 것이다.’

우리가 이 두 부분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의 내재적 가치라는 개념과 이 내재적 가치가 어떤 경우에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홍우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그가 말하는 ‘내재적 목적’ 이라는 개념과 ‘내재적 가치’ 라는 개념은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실상은 서로 상반된 것이라고 또는 차라리 ‘내재적 가치’ 가 ‘내재적 목적’ 을 아우르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이홍우는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을 수단화된 교육으로 파악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발전과 교육의 관계가 그러하다. 이홍우는 이 관계를 분석하면서,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사실적 관계에 바탕을 둔 관계임을 말하고, 이에 대해 ‘외재적 목적’ 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에 대립되는 개념,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도출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목적으로서 ‘내재적 목적’ 을 제시한다. 이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안목을 형성’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인간형을 ‘사범형 인간’ 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사범형 인간’ 은 이기적이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세속적 의미에서 바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홍우가 제시하는 ‘사범형 인간’ 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개인적이다. 물론 이홍우의 이러한 시도는 외재적 목적 대신 내재적 목적으로 전환하여, 교육이 스스로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에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사범형 인간’ 은 또다른 역편향만을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현실’ 과 ‘관계’ 가 빠져 있다. 이홍우에게는 이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안목’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재적 가치’ 라는 개념은 어떤 것인가 ? 유의태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기량, 곧 자신의 능력을 증대하는 것이다. 내재적 목적에서와 마찬가지로 외재적 결과, 예를 들어 경제 성장, 보다 개인적으로는 출세, 명예 따위는 이런 내재적 가치의 부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내재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한 인간의 능력을, 해당 분야에서의 능력을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간형은 사범형 인간과는 달리 유물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내재적 가치가 의미를 가지는 때는 어느 경우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내재적 가치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 이 물음은 내재적 가치가 그 자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굳이 어색한 표현을 써서 나타내자면 ‘미의미’ 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은 아직 잠재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내재적 가치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현실적 관계 속에서 그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내재적 가치가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능력의 증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사범형 인간과 다를바 없다 ) 그것이 어떤 관계, 곧 인간 관계 속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첫번째 대화 부분에서 ‘긍휼’ 이라는 낱말을 떠올려야 한다. 유의태가 아들인 유도지보다 허준에게 보다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 ‘긍휼’ 때문이었다. 바로 이 긍휼이 드라마 ‘허준’ 에서 그 능력을 현실화의 단계로 끄집어 내는, 허준이라는 한 인간의 능력을 다른 인간( 병자들 )과의 관계속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두번째 대화 부분을 살펴 보자. 그렇다면 어째서 허준은 유의태를 배신한 것이 되는가. 이는 유의태의 친구가 다음과 같은 말로써 대답해 준다.

‘의원이 병자를 고치면, 다시 병자는 의원을 고치네. 병자를 혼신을 다해 고치면서, 의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악한 마음을 없앨 수 있는 것이네.’

이것이 바로 긍휼의 진정한 의미이다. 유의태가 허준이 서찰을 받는 순간 의원되기를 포기한 것이라 말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어떤 한 인간이 내재적 가치 또는 내재적 목적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그것 자체로 완전해질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관계성 그리고 양방향의 역설을 가질 수 있을 때, 과정으로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이홍우의 전략은 부분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몰라도 절름발이 교육을 양산해냈을 뿐이다. 그가 관념론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그런 전략이 나왔는지, 아니면 그런 전략을 취했기에 관념론에 머무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이론중심주의 교육론이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요컨대 내재적 목적과 내재적 가치가 대립을 이루는 것은 하나는 관념적이고 고립적인 반면, 다른 하나는 현실적이고 개방적이기 때문이고, 내재적 가치가 내재적 목적을 아우르는 것은 내재적 목적이라는 개념이 빠뜨리고 있는 ‘관계’ 를 복원함으로써 내재적 목적의 오류를 바로잡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허준’ 은 이와 함께 또 다른 독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 문제는 유도지와 허준의 대비를 통해서 드러난다. 유도지에게 있어 의과 시험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자신의 위신을 높이는 수단이다. 반면에 허준의 경우에는 그가 처한 사회구조적 위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다만 자신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무고죄로 진사에게 매를 맞는 아내, 언제나 굴욕적으로 살아야 하는 어머니. 허준이 다른 모든 제안들에는 흔들리지 않다가, 서찰하나에 흔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유의태는 이 두 경우를 같게 처리했지만, 두 경우에 있어 실질적 의미는 분명 다르다. 왜냐하면 유도지의 경우 소위 명예욕에 사로 잡힌 것이고, 허준의 경우 명예욕 보다는 생존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드라마 ‘허준’ 이 제기하고 있는 또 다른 교육학적 물음이다. 과연 우리는 허준과 같은 생존에 허덕이는, 불평등 구조에 얽매여 있는 이들이 소위 ‘외재적 목적’ 을 추구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는가 ? 교육은 ‘내재적 가치’ 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따라서 이 물음은 ‘교육의 내재적 가치’ 가 성립하려면 전제되어야 할 무엇인가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평등이다.

요컨대 드라마 ‘허준’ 은 이 시대에 있어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교육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앞서 사회적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드라마 ‘허준’ 은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이 시대의 교육 환경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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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렬 주연의 허준... 언제적 드라마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그 때쯤 쓴 글을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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