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 기생수 > 를 보고...

고등학교 때였나 ? <기생수> 라는 만화책을 보았던 것이. 오른손에 기생수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다만 몇 권 읽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런데 지난해 말에 애니 <기생수> 가 방영되었고, 올해 초에 완결되었다. 역시 애니는 완결판을 몰아보아야 제 맛이다. 지난 주말에 <기생수> 를 몰아보았다.

만화책을 몇 권 읽지 못했던 터라, 전체적인 내용과 주제를 알지 못했는데, 꽤 재밌는 내용과 주제를 담고 있었다.

우선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신이치의 여자 친구로 등장하는 사토미는 계속해서 신이치에게 묻는다. 신이치가 맞느냐고. 기존의 신이치와 분위기가 다르다는 느낀 것이지만, 이것이 곧 신이치의 인가다움에 대한 질문이다.

오른쪽이가 기생하면서 신이치의 성격이 달라지던 차에, 신이치가 신이치의 엄마를 조종하는 기생수에게 심장을 뚫려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숙주인 신이치가 죽게 되면, 기생수인 오른쪽이도 죽게되므로, 심장을 꿰매 기능을 되돌린다. 이 와중에 오른쪽이의 일부가 신이치의 몸에 퍼지면서, 더욱 차가워졌다. 신이치 자신도 이런 모습이 인간답지 않다고 괴로워한다.

인간다움은 무엇일까 ? 어떤 이들은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은 이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성의 우월성을 강조하던 근대주의적 사고는 결국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무너진다. 그리고 이성/합리성으로 따지자면 기생수보다 인간이 더 앞설 수 있을까 ? 그렇다면 이제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규정할 수 있을까 ?

<기생수> 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감성이다. 특히 맹자가 주장했던 측은지심. 주변에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을 어여쁘게 여길 수 있는 마음.

신이치는 차에 치여 죽을 위험에 처한 강아지를 구하고서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신이치는 그 강아지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사토미는 이를 보고 경악한다. 물론 사토미가 사라진 후, 스스로를 반성한 신이치는 다시 강아지를 나무 밑에 묻어주지만.

그리고 타미야 료코가 보여주었던 아기에 대한 모성애. 신이치를 고토에게서 살려내려던 오른쪽이의 희생정신.

마지막에 오른쪽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극찬한다. 자신들과 다른 종의 생명체도 돌볼 수 있는 이 여유. 이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훌륭한 것이냐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바로 측은지심이 있다고 생각된다. 측은지심이 인간다움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측은지심이 인간다움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일까 ? 나중에 사토미는 신이치의 인간다움을 긍정한다. 신이치가 맞다며.

<기생수> 는 인간중심주의와 자연중심주의에 대해서도 다룬다.

신이치는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에 괴로워하면서도 오른쪽이에게는 동족인 다른 기생수들을 죽이도록 한다. 물론 오른쪽이는 동족을 죽이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신이치에게 묻는다. 입장을 바꾸면 어떨 것 같냐고. 이에 신이치는 대답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적 모습이다.

반면에 <기생수> 를 보다보면 흥미로운 인물이 나온다. 히로카와 시장이다. 평범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생수들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의 명분은 이렇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수를 줄이면 지구도 그만큼 덜 파괴되지 않을까 ? 그리고 일갈한다.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수다". 이를 보통 자연중심주의라고 부른다.

인간중심주의와 자연중심주의의 대립은 판타지 소설들의 오래된 주제이다. 인간에게 악마라고 불리던 존재가 사실은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는 인간을 벌하려는 존재였다는.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엄청 괴로워한다.

하지만 고토가 폭발하고나서 다시 부활하려고 할 때, 신이치는 망설인다. 만약 초반의 인간중심주의적 입장의 신이치였다면 고토를가 다시 부활하지 못하도록 바로 죽여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중심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상의 생물로서 공정한 선택을 하겠다며 고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돌아가려 하자, 오른쪽이가 말한다. 지구를 위하여 따위의 말을 하는 인간은 싫어. 왜냐하면 지구는 울지도 웃지도 않으니까 말이지라고.

이 말을 듣고서 신이치는 되돌아가 고토를 죽인다. 신이치는 인간을 위해서도, 지구를 위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행동한 것 뿐이다.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자연을 살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인간을 그저 자연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각색하는 허울 좋은 말들일 뿐이다. 사실은 그 때문에 생겨나는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여러 생물 종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인류를 위해서다. 인간을 위해서다.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행동일 뿐이다.

오른쪽이의 이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중심주의든 자연중심주의든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다. 이런 저런 명분보다 그 안에 감싸여 있는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자기 자신을 위한 하는 것이라고.

<기생수> 의 마지막 화 제목은 "기생수" 이다. 하지만 실제 기생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청 사건 이후로 모두 사라졌거나, 인간들 생활 방식을 습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마지막화에는 기생수 대신에 연쇄 살인범 우라카미가 등장한다. 그리고 신이치에게 묻는다. 본능에 따라 정직하게 인간을 죽이는 자신이야 말로 진짜 인간이 아니냐고. 어쩌면 작가는 우라카미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기생수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까 ? 이런 기생수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 넘쳐나는데, 진짜 "기생수" 가 있을 자리가 있을까 ?

하지만, 기생수의 기원과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했던 타미야 료코는, 기생수는 연약한 존재라고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인간과 기생수 모두가 가족이라고 했다.

여러 기생수가 한 몸에 들어가 무적으로 보였던 고토는, 신이치가 몸에 넣은 독극물 때문에 몸 속에 있던 기생수들이 서로 살기 위해 빠져 나오려고 하자, 결국 죽고 만다.

고토가 강해보였던 것은 여러 기생수들이 한 몸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깨어지자 마자 고토는 죽는다.

어쩌면 저 연쇄 살인범 우라카미뿐만 아니라,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기생수인 것은 아닐까 ? 타미야 료코의 말이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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