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도계의 철학 > 을 읽고...

지난 5 월이었던 것 같다. EBS 에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라는 강의가 방송되고 있었다. 평소에 과학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재밌게 보았다. 그런데 방송 내용이 그가 쓴 '온도계의 철학' 이라는 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얼른 주문해서 읽기 시작했다. 조금 읽다가 계속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면서 미루어오다가,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지 해서, 해가 지나기 전 두 시간 전쯤에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면 온도계의 철학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측정의 과정을 다룬 책이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잊혀져 왔던 몇 몇 과학자들의 업적을 재평가하기도 하고, 측정하면서 겪는 어려움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알려준다.

장하석은 새로운 영역, 미지의 영역에 대한 측정을 하려는 순간, 측정을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고,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는 다시 측정 결과가 필요하다는 순환 논증 빠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의 과학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여러 온도 기준점들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보다 먼저 온도 측정을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곧 온도계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아주 자세히 보여준다.

결국 장하석은 과학사를 들여다봄으로써 지금은 당연한 것이 과거에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더 나아가, 과학계 주류에 대한 비판도 가한다. 현재의 과학계는 일종의 엘리트 과학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 엘리트 과학자들만이 그들만의 언어로 과학을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도계의 발전 과정을 살펴 보면서, 장하석은 그 발전 과정에 기여한 인물들이 요즘처럼 전문 과학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당시 사회적으로 과학에 기여했던 많은 인물들 또한 요즘 말하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간혹 천문 관측 분야에서 그 활동이 제한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장하석은 이런 경향성을 비판한다. 엘리트 과학자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일반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형태로 과학을 포장함으로써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멀어지고, 과학은 이제 신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하석은 제안한다. 재야 과학자들, 소위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활동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이것이 얼토당토 않은 마구잡이식 신비주의식 접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라카토스는 연구 프로그램이라는 방법론을 통해서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넘어섰다. 장하석 또한 라카토스의 연구 프로그램 선상에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주류 프로그램이 성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주류 프로그램들이 쿤의 패러다임처럼 또는 포퍼의 반증주의 처럼 간단히 폐기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 비주류 프로그램들을 재야 과학자들이 꾸준히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주류 프로그램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의 입장에서 장하석은 주류 프로그램이 놓치고 있는 측면들 곧 인문학적, 사회학적 측면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흔히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하는데,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이 어딘가에 쓰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과학철학은 바로 그런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재야 과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는 더 나아가서, 대중들이 다가갈 수 있는, 쉽게 알 수 있는 교양 과학으로 이어진다. 과학사를 통해, 과학철학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류 프로그램의 엘리트 과학에 치여 대중들이 과학에서 멀어지면 결국 과학은 그들만의 세상이 되고, 제어할 수 없게 되어, 또 하나의 권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하석은 주장한다. 주류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사라져 가고 있는 비주류 프로그램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것들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재야 과학자, 소위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역할이 바로 이 영역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교양 과학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류 프로그램의폭주를 막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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