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른마음 > 을 읽고...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마음> 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 <시사인> 을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시사인> 의 책소개 꼭지에서 보았던 것 같다.

정말 궁금했다. 진보와 보수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왜 다른지. 소위 서민이나 빈민 계층에서 보수가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렇게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계속 미루어 오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책은 크게 3 부로 나누어진다. 1 부에서는 "바른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이며 전략적이다_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 라는 제 1 원칙을 제시한다. 이에 대한 이론적 배경으로 플라톤의 <국가론> 에 등장하는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에게 던지는 질문과,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주장을 제시한다. 물론 이뿐만은 아니라 여러가지 심리 실험을 통해서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 라는 주장을 정당화한다.

이러한 주장은 기존의 이성을 중심으로 한 합리주의 전통에 대해 반박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판단이 합리적 추론을 거쳐 형성된다고 믿지만, 실제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그것은 그저 우리의 바람에 불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느낌(하이트는 직관이라고 한다)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해 합리화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첫인상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고, 이 판단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판단과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 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첫인상에 따른 판단을 믿고, 그 의견을 무시한다. 이 판단은 아주 직접적이고 강력한 계기가 있기 전까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하이트는 합리주의가 아니라 직관주의가 옳다고 주장한다. 오랜 철학적 논쟁의 흐름에서 보자면, 주지주의와 주의주의 중에서 주의주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주지주의보다는 주의주의의 입장에 가깝기 때문에 하이트의 이러한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대체로 보수는 감성적인 직관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한다면, 진보는 이성적인 논리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렇다보니, 실제 사람들이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직관에 호소하는 보수의 주장이다. 제아무리 진보가 이성적인 논리로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하더라도 직관을 통해 결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그나마 새정치민주연합이 정신을 차렸는지, 광고 전문가를 영입한 것은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오래만에 제대로된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2 부에서는 "바른 마음에는 다양한 힘이 있다_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는 제 2 원칙을 제시한다. 이 원칙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많이 해소해 주었다. 우선 하이트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도덕적 기반이 있다고 주장한다. 각각 배려와 피해, 자유와 압제, 공평성과 부정, 충성심과 배신, 권위와 전복, 고귀함과 추함이다.

그런데 이 6 가지 기반 중에서 진보 진영에서 사용하는 도덕적 기반은 배려/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세 가지 뿐이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6 가지 도덕 기반 모두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 진영에서는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을 버려야 할 또는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생각하는 공평성은 서로가 상이한데, 진보의 경우 배려/피해가 우선되어 공평성의 개념을 정치적 평등 또는 결과적 평등으로 받아들이지만, 보수의 경우에는 비례적 평등을 공평성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복지의 개념을 보수 진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흔히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도덕적 기반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보수의 경우 충성심, 권위 등을 강조하여 분열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대로 경직되어 부패하기가 쉽다. 반면, 진보의 경우 자유, 평등 등을 강조하여 구심점이 없어지고, 때로는 작은 다름때문에 같이 하지 못하고 분열되기 쉽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새누리당과 새청지민주연합의 모습을 살펴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콩가루 같은 분위기를 비판할 때, 새누리당은 이전투구를 하더라도 결국 선거가 되면 서로 똘똘 뭉치면서 헤쳐나가는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도부가 형성되도 인정하지 않고, 선거가 다가와도 적전 분열을 일삼는 행태를 반복한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물론 각자의 이해와 권력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겠지만, 그 기저에는 이런 도덕적 기반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소위 진보 진영에서도 충성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위를 존중하는 전통이 하루 빨리 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도시와 시골의 정치적 성향도 분석하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나날이 등장하는 도시에 비해 시골은 변화가 거의 없다. 게다가 공동체의 규모는 시골이 훨씬 작지만, 소속감은 훨씬 크다. 이런 경우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기반이 작동하기 쉬우므로, 보수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기 쉽다. 그에 반해 도시의 경우, 공동체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소속감이 크지 않다. 따라서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보다는 자유/압제 기반이 훨씬 크게 작동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진보 진영의 아젠다가 잘 먹힌다.

흔히 우리는 선거가 있고 나서 진보 진영의 패배를 설명할 때 계급이반 투표가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부자들이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보수 진영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서민들은 어째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보 진영에 투표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질문이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도덕적 기반에 따라 투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보 진영이 서민들의 직관에 호소하지 못한 것일 뿐, 서민들이 계급이반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설명을 잘 하면 진보 진영의 진정성을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그저 진보 진영의 바람일 뿐인 것이다. 정말 그들에게 호소하고 싶다면 그들의 도덕적 기반을 활용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하이트는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언어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표가 기의를 결정한다며, 기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부에서는 "바른 마음은 개인보다 집단의 차원에서 더 강력하다_도덕은 사람들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 는 제 3 원칙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하이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애초에 진보주의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보수주의자가 될 것인지,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어떤 환경을 접하느냐에 따라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성향은 있다고 한다.
하이트는 종교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양을 할애해 설명하고 있다. 이와중에 과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반박을 재반박하고 있는데, 논점이 다소 잘못되어 있는 듯하다. 과학자들이 특히 비판하는 것은, 종교 전체가 아니라 창조론의 또다른 이름인 지적설계가 진화론을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인냥 포장하는 행위인데, 마치 종교 자체를 쓸모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가정하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강력한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초월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현상을 문화적 유전자로 불리는 밈으로서 그 현상을 설명한다. 그리고 진화는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주류 이론을 집단선택을 통한 진화로 대체로하고자 하는데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물론 두 이론이 동등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집단선택이 유전자 선택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장대익의 <다윈의 식탁> 참조). 다만, 집단성이 도덕적 성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는 수긍이 간다.

끝으로 하이트는 도덕적 자본을 이야기 한다. 간단히 이야기 하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도덕적 규범이다. 진보 진영에서 놓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체의 도덕적 자본을 무시하다보니 어떤 아젠다를 제시했을 때, 공동체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이트는 바로 이 부분이 진보 진영의 가장 근본적인 맹점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부의 집단선택과 종교에 대한 설명을 제외한다면 하이트의 주장에 크게 동의하는 바이며, 진보진영에게 시사하는 바도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첫째, 합리적인 설명보다는 직관에 호소할 필요하가 있고, 둘째, 세 가지의 도덕적 기반을 제한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여섯 가지 도덕적 기반을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끝으로 셋째, 공동체가 보유하고 있는 도덕적 자본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것을 고려한 아젠다를 설정해야 한다.

하이트 자신도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고, 진보진영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말도 한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한다면 진보진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다만 고귀함을 종교에만 국한된 도덕적 기반으로 설명하는 것과 창조론에 대한 과학계의 비판을, 종교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하여 종교 편향적으로 서술한 것은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공동체로서의 종교 현상을 놓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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