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을 그리다 > 를 읽고...

배종훈 작가의 <유럽을 그리다> 를 읽었다.

처음 읽으면 이 책이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읽다 보면 작가의 경험이 배어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도 여행을 하는 모든 이가 꿈꾸는 여행지에서의 사랑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것을.

이 책의 특징이라면 89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면은 짧은 글과 여행지를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는 읽는 이에게 각 장면이 소설이 아니라 시인 것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게다가 함께 곁들인 그림은 그런 착각을 배가한다. 마치 과거 선비들이 즐겼다던 시와 그림을 함께 한 것 같은 착각.

특히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배종훈 작가의 그림은 마치 여행지에 직접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가장 인상에 남는 그림은 <#08 여행의 시간> 에 나오는 <아비뇽의 새벽> 이다.

사실 이 책의 발간과 함께 한 배종훈 작가의 그림 전시회를 갔었다. 그 때 전시회장 앞에 세워져 있던 현수막에 몇 개의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이 작품이었다. 전시회장에 빨리 가서 실제 그림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팔리고 없다고 했다. 정말 아쉬웠다. 그래도 그 그림이 이 책에 실려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작품을 처음 보자마자 감동을 받았던 까닭은, 어두운 도시와 대비되는,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새벽녘의 하늘이 왜인지 모르게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39 그리움은 항상 높은 곳과 물이 있는 곳에 모인다> 에 그려져 있는 <당신이 없는 시간 2> 와 <#52 원 데이> 에 그려져 있는 <당신이 없는 시간> 을 보면서 <당신> 이 없으면 내가 보는 세상에는 결국 어둠이 스미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당신> 이 사라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도 함께.

이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기면서, 예전에 스페인을 여행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 때 적어두었던 일기를 다시금 펼쳐 보았다. 이 책에 나와있는 여행지에서의 기록도 있었다. 그리고 같이 여행했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은 여행을 할 때 여행지에서 자기에게 엽서를 보낸다고 했다.

이 책도 그런 엽서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글만 적어서 보냈지만, 이 책은 여행지에서 보낸 그림 엽서를 모아 놓은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간결함과 여유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 편지가 아닌 엽서의 느낌 말이다.

이 책의 부제는 <사랑을 부르는 배종훈의 여행 그림 이야기> 이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전체를 관통하지만, 그것이 남녀의 사랑으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모든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때 가지는 바람 또는 목적. 바로 이것이 '그녀' 가 아닐까 ? 여행을 계획할 때 여행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있지만, 여행에서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싶지 않다. 결국 '그녀' 는 화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모습이 투영된 화자 내면의 자아인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그 내면의 자아와 대화하는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

<#89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의 마지막 문장이 그래서 더욱 와닿는다.

그러므로 내 생의 가장 눈부신 날은 아직 오지 않았고, 여행도 사랑도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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